[책읽는 블로거]상처받은 20대를 위하여
남은 나의 20대는
자신의 이십 대가 얼마 남자 않았음을 인식하는 것은, ‘슬픔’이나 ‘아쉬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 당신이 20대 여자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 여자, 20대 여자. 문득 2010년에 내가 20대를 누릴 시간이 2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더불어 “선배님, 밥 사주세요.”와 “엄마, 이거 상했어?”라는 문장을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을 시간도 2년 밖에 안 남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차 키를 쥐고 무작정 나섰다. 이렇게 내내 어설프기만 한 채로 20대를 마무리할 수는 없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채로, 해본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이 훨씬 많은 채로, 성공 없는 실패만 가득 한 채로.
생애 첫 자기계발서
거창하게 나서긴 했지만 딱히 갈 곳은 없었다. 기분이 기분이니만큼 클럽을 갈 수도 술을 마시기도 싫었다. 혼자 영화를 볼까 하고 코엑스에 들렀다가 너무 많은 인파, 정확히 말하자면 20대 초반을 막 지나고 있는 이들의 에너지에 기가 눌려 서점으로 들어섰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기계발서’는 절대 읽지 않았다. 학부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면서 얻은 유일한 자존심의 표현이었다. ‘자기계발서’는 문학적 가치가 전무하며 자존감이라고는 없는 사람이 읽는 남의 얘기이고 남의 목소리에 자극 받는 사람은 내면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믿었다. ‘‘씨크릿’이 유행할 때도 ‘아침형 인간’이 유행할 때도 난 꿋꿋했다. 오히려 읽지도 않는 ‘백석’전집을 사들였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누군가 20대를 먼저 지나간 사람의, 혼란스럽고 아까운 시간들을 완벽하게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성공담도 좋고 무용담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지구는 아니어도 서울쯤은 너끈히 두를 듯이 많은 자기계발서들 사이에서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를 발견한 것은 ‘베스트 셀러’나 ‘하반기 주목 받은 서적’이라는 타이틀 만은 아니었다.
20대 여자와 사회생활의 모든 것-당당하고 자랑스러운 20대를 살고 싶은 독자를 위한…
평소 같았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멘트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의외로 저자가 미녀인 점도 한 몫 했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책 날개에는 사진을 넣는 것이 좋다)
가볍게 읽히는 무거운 책
책의 상당부분은 처음 하는 좌충우돌 직장생활에 대한 팁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20대 여자를 위한 충고였다. 하지만 “난 이래서 성공했으니, 너희도 해볼래?”라는 말투가 아닌, “난 이렇게 해서 힘들었으니 여러분들은 되도록 그렇게 마시라”는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작가의 특이한 이력상, 자랑만 늘어놓았다면 “그래 너는 원래 대단하구나. 내 인생은 뭐지”라는 반발감이 들었을 텐데 친한 친구에게도 민망할 법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점이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친한 사이가 된 듯했다. 전화를 걸어 “언니, 회사에 입고 갔다던 핑크색 트레이닝 복 지금도 있어요?”하고 질문이라도 하고 싶었다. 문장도 깔끔하고 읽기 편했다. 저자의 성격이 원래 쿨한 건지 울고 짜는 자기 연민이나 과장된 감정 표현이 없는 것도 괜찮았다. 울고 불고 지지고 볶는 20대 여자 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직자가 듣는 직장생활
가장 흥미롭지만 공감되지 않는 부분은 ‘직장생활’에 관한 부분이다. 하지만 오해는 말아달라. 공감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28년 간 한 번도 직장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무직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선물한 후배 한 명(직장생활 4년 차)은 너무나 공감되는 나머지 새벽 두 시에 홀로 와인을 땄다고 한다.
관찰 및 간접경험에 의하면 20대 여성의 직장생활은 녹록치 않다. 직장생활 1년 만에 10Kg 체중 증가. 성인여드름. 생리불순. 알콜중독. 불명증. 마음속으로 욕하기의 달인이 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들이 나를 보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너 이런 말투 평생갈 것 같지? 너도 일 해봐” 였고, 나 역시 도대체 직장이란 괴물은 무엇이길래 여렸던 대학생들을 한 번에 참전인사처럼 전투적으로 바꿔 놓는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사내정치,멘토,비주류의 성공전략, 기획서 쓰는 법을 비롯하여 여자 직장 친구 사귀는 법, 경계해야 하는 직장 내 남자 들에 대한 조언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니, 왜 직장 생활 3년 만에 우등생이던 대학 동기가 술독에 빠져 욕을 하는 지, ‘시크’한 독립여성이던 후배가 다 때려치우고 시집을 갔는지 이해가 되어 갔다. 하지만 피해갈 수 있는 실수들을 빠짐없이 저지르는 일만 안하더라도 80%의 에너지는 보존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 지, 자꾸만 전화를 걸어대는 회사 선배를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 지 따위를 누군가가 가르쳐 주었다면 20대 여성의 직장생활은 덜 지쳤을 것이다.
이 글을 다 읽은 나는 왠지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서류전형이라도 통과하고 봐야 하겠지만.
20대를 여성을 위한 변명
20대 여성은 수많은 편견들에 휩싸여 있다. 세상이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그 울타리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확신도 없다. 저자는 그런 우리를 위한 변명을 아주 당당하게 내어 놓는다. 왜 우리가 무개념녀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정말 된장녀라고 불려야 하는지, 그러면서도 실제 어린 명품족에 대한 충고와 공동명의 계좌부터 정리해야 하는 디지털 이별에 대해서, 정치와 경제에도 눈감아서는 안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성형문화와 소개팅, 미니홈피와 스파게티 등 20대 여성의 키워드에 대해 든든한 대변인이 되어준다.
이 책이 가져다 준 메시지
사실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변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감동받았다고 한들 이제껏 쌓아온 내 자신에 대한 애착을 한 번에 버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내게 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기 위해서’는 웅크리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 행동하고 후회하는 것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는 것. 이제껏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사실은 아무것도 해보지 않아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당차고 용기 있어 보이는 저자의 사진을 뒤로하고 책을 덮는다. 자, 이제 무엇부터 시작해볼까?
수많은 20대 여성과, 그녀들을 이해하고 싶은 타인들에게 권한다.
[책읽는 블로거] ‘못생긴 여주인공’이 일깨워주는 불편한 성찰
정말 솔직하게 써보자면, 한번도 영화나 책을 보면서 ‘왜 주인공은 다 예쁘거나 잘생겼을까’, ‘못생긴 사람이 사랑받는 작품은 왜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주인공은 잘났고, 여자란 무릇 예뻐야 사랑받는 줄 알았다. 이처럼 길들여진 나의 문제의식에 꽝, 하고 충격을 가져다 준 책이 있다.
못생긴 여자가 사랑받는 최초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전혀 아름답지 않은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작가의 말처럼 깜짝 놀랄만큼 못생긴 추녀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책이다. 이런 전례없는 캐릭터 설정 때문에 사실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그 사실을 불편해하는 내가 더 불편하기도 했고.

“단언컨대 인류는 단 한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 될 것입니다”
작가 박민규의 말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추녀인 주인공을 누가 맡을런지가 벌써 궁금해진다. 아무리 못생겨도 연예인인데, 이 소설에 나온 주인공의 외모를 제대로 나타낼 만 한 인물이 있기나 할런지. 제발 원래 미녀인 여자가 추녀 분장을 하는 일만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면 이 소설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가 없을 게 분명하니까.
배경은 1980년대 중반이다. 남자주인공인 ‘나’는 잘생긴 아버지와 못생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삼류배우였던 잘생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기생하듯 살아가다가 결국에 주인공도 어머니도 버린다. 새장가를 간다. 잘나가는 미모의 여성에게. 그래서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잘생긴 외모를 ‘아버지가 싸지르고 간 똥’처럼 여기게 된다. 그런 그가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여주인공을 만난다. 여주인공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못생긴 외모를 갖고 있고, 그래서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다. 이 둘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 과정을 남자 주인공의 회상 형식으로 그려나가는 이야기다.

사랑 이야기지만 단순한 연애소설은 아니다. 외모지상주의, 경쟁우의, 황금만능주의. 이렇게 치우친 가치기준에 대한 비판, 존재감이 거의 없는 패배자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의 뼈대를 이룬다. 그리고 스무살 남자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80년대의 스무살들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다면, 2000년대에 스무살을 보낸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눈앞을 가린다. 그만큼 이 책에는 당대의 스무살들이 고뇌할 만 한 여러가지 소재들이 등장한다. 책, 음악, 사회, 계급, 그리고 인생 전반에 대해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원래는 피아노 연주곡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연주곡명이다. 작곡가 라벨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곡을 지었다고 한다. 소설 제목은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그림은 실제로 주인공에 대한 논란이 있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운데 있는 예쁜 여자를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오른쪽 옆의 못생긴 광대를 주인공으로 봤다. 제목과 그림과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미추에 대한 개념에 대해 고민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많이 배우고 돈을 많이 가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여러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숨에 읽을 수 있어’ 좋다. 한 번 잡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봐야 하는 책이다. 최근 몇달 사이에 읽은 책 중 재미로는 베스트3 안에 드는 것 같다. 소설은 읽어야 맛이므로, 더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한다. 소설 속 분위기를 더 리얼하게 느끼고 싶다면 비오는 날 통닭에 맥주 한잔 곁들이시라.